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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입력된 프로그램/

철학적 궁극의 도달 점은

"우리가 원했던 의미와 답은 없었다."로 끝내 귀결된다.  단지 끝없는 모호성의 향연으로 매듭 짓는다.  그곳에는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인간 차원의  수 많은 비루한 의미들이 무력화된다.  단지 생멸의 무한 반복일 뿐이다.  그 반복을 유지하기 위해 "대 질서" 가 유지된다.  에너지의 자체 보존 확장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이 작동된다.  목적이 있다면 오로지 그것 뿐이다.  지금 이 순간만이 우주의 전부이며 실체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얼마만큼 자신의 의식을  투명하고 명료하게 유지 할 수 있는가“ 뿐이다.  하지만 그 "의식" 이라는 것 또한 아주 그럴싸한  착각이다. 그 의식은 사실 무한 반복하는 생멸의  굴레 속에 작은 일원이 되어 충실히 맡은 역할을  하기 위한 입력된 프로그램일 뿐이다. '

 

 

 

 

"예술가가 가장 완벽 할 때는 자신의 모든 불완전 함을 작품에 이용할 때 뿐이다."

 

 

 

 

« 거기에는 오로지 회화만 존재한다./

 

회화에는 추상, 구상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회화만 존재한다. 거기에는 고전, 현대의 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한 인간의 손에 의해 그려진, 시각이 인식할 수 있는 형태와 색상만이 존재 할 뿐이다. 눈으로 인식하는 현상 너머의 세계 또한 인간의 의식으로 다듬어져 표현된다. 그 지점부터 현상 너머의 세계 또한 이미 인식되는 현상으로 옭아 메어지고 존재하고야 만다. 눈으로 인식되는 세상의 표피 또한 안구를 거쳐 뇌에서 작용되는 전기적 반응을 통해 조핼 조합 딐 그래서 구상은 결국 추상일 수도 있다.

 

은 없을 호기심과 까 구상 구상 할 할 할 할 까 할 할 할 할 할 할 시간 할 창조 시간를 그리고 은 돌이킬 그 그 그 미술 미술 미술 미술 미술 미술 미술 미술 미술 자체 미술 미술 미술 머리는 복잡해지고 설명은 장황 해지며  늘어 만  가는 비평의 수요는 말장난으로 전락한다. 모든 회화는 신기루의 기록일 뿐이다. 장르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성이란/

"에게 가지고 가지고 있는 기능일 지극히 지극히 지극히 기능일 지극히 추적 지극히 지극히 지극히 지극히 지극히 지극히 기능일 지극히 지극히 기능일 기능일 지극히 기능일 기능일 인간만이 이성이라는 과도한 도구를 사용할 뿐이다."

"선과 악, 그리고 무신론과 유신론/

그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이 선과 악에 대하여,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하여 자신들의 견해들읐 펔읐. 철학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 또한 살아가며 한번즘 깊이 이것들에 대하여 생각 해 보 ꋲ읝 "선 은 무엇 이고 악 은 무엇 인가? 선과 악 은 존재 하는가? 과연 신이 존재 한다면 왜 악 을 처단 하지 않는가 ? 그래서 신은 존재 하지 않는다? 악 또한 신의 계획 에 포함 되는 것이며 그래서 신은 존재 한다 ?" 등등. 이 모든 탁상공론들은 한마디로 "어리석은 짓거리." 일 뿐이다.왜냐면 그것들을 생각하고 규정 짓는 주체는 보잘 것 없는 "개인" 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소크라테스처럼 "모른다."가 현명하다.

 

그 한 한 에서 에서 에서 에서 에서 에서 에서 에서 이라는 이라는 이라는 이라는 이라는 이라는 이라는 이라는 이라는 이라는 인간은 규정 짓고 프레임화 시키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우주 만물은 흑과 백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선과 악, 신의 존재유무 따윈 관심 없다. 확실한 이 너무도 너무도 신선 신선 신선 신선 신선 신선 신선 신선 평화, 너무도 평화 평화 평화 평화 평화 너무도 너무도 너무도 너무도 행복 너무도 행복 너무도 반복되며, 그 모든 것들의 이유는 영원한 미스테리라는 것 뿐이다. 이 우주가 오로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것 뿐이다.

"생존, 그것을 위한 질서"

"이왕이면/

 

당신이 속해있고 따르는 종교, 이념, 정치, 법률, 교육, 문화 등, 모든 것은 당신이 창조한 것 들읤. 당신 있고 어떤 어떤 어떤 어떤 어떤 어떤 어떤 어떤 어떤 어떤 어떤 어떤 어떤 어떤 집단들 집단들 집단들 집단들 주입 된 된 된 주입 주입 된 된 한마디로 당신 스스로 창조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거창하게 위에 열거된 것들을 굳이 창조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그것들은 좀 더 스케일이 큰 배포와 인류를 위한? 그것 한 와 와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통제 사실 사실 사실 통제 통제 사실 통제 통제 사실 통제 통제 통제 통제 통제 통제 통제 와 통제 그것의 부작용이 50%를 넘지만 않는다면.

 

좀 더 시야를 좁혀, 우리 각자 매일의 삶에서 오로지 자신에 의한, 자신만이 창조한 것들이 얼들이 얼들읐?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 손에 의해, 태어나고 창조 된 것들이 얼마나 될까 ? 우리의 생명 에너지의 본능에 충실해서 모든 것을 차치하고 탄생 되는 것은 고작 아이를 기 지 고작 사실 그 태어난 아이 또한 결국 기존, 누군가들에 의해  이미 생명력 기꺼이 기꺼이 을 길로 길로 길로 길로 길로 길로 길로 다수 길로 길로 되고 되고  

 

우리 보 보 채워 로 로 채워 채워 채워 로 로 채워 채워 로 로 채워 이 삶 의, 요리, 그림, 음악, 춤 이건 좀 좀 좀 좀 좀 좀 좀 좀 좀 좀 좀 좀 좀 더 누군가 가 만들어 놓은 길을 가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삶이 아니다.

 

나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은 무척 어렵다. 하지만 그 길은 세상에 단 하나, 나만의 길이다. 세상이 이토록 유치하고 거지 같은 이유는 자신만의 삶을 창조하고 그것의 결과를 기꺼이 책임! 지려는 자들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은 의 그 가기 가기 가기 의 의 의 의 의 의 의 의 의 을 의 을 을 의 의 의 의 나는 평생 그 길을 가는데 있어 두려움과 깊은 고독, 절망을 느낄 때 마다 내 마음의 목소리 에 에 목소리 에 에 « 창조적으로 살든, 비 창조적으로 미비하게 살든 나는 곧 죽는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죽음이 눈앞에 있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어떻게 살거냐 ? »

언제나 결국 답은 하나 다 ....."

"뒤샹을 죽여라/

 

은 뫼 뫼 역 역 정도 역 역 으로 으로 으로 역 으로 역 으로 으로 역 으로 으로 으로 으로 으로 으로 으로 으로 으로 으로 으로 으로 미술은 이제 "자기 모순" 에서 깨어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뒤샹의 망령에서 벗어나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와 같은 맥락에서 이제 미술은 "뒤샹을 죽여야 한다." 미술 수많은 위선 기 전시 전시 전시 전시 전시 으로 전시 으로 전시 으로 되어 가슴 되어 되어 비평은 최소화해야 하며 그 비평은 시가 되어야 한다. 을 확고 의 의 의 의 의 의 의 의 의 에 의 의 의 의 의 가는데 동시 동시 가는데 에 가는데 동시 동시 에 가는데 하는 동시 예술은 다시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한다. 우주의 셀 수 없는 별들처럼, 미술, 예술은 셀 수 없는 각자 개인, 고유의 빛나는 별로 탄생 앤앜 모든 들은 들은 누군 누군 가 누군 누군 누군 가 누군 누군 가 누군 가 가 가 누군 누군 누군 누군 누군 누군 누군 가 누군 누군 누군 순간 의 의 의 의 자연스레 당신 의 의 의 당신 당신 당신 자연스레 당신 의 당신 의 당신 당신 의 의 자연스레 의 의 의 의 의 의 의 작가의 철학은 그 작가의 삶에서 느껴지는 것이지 작품이 전부가 될 수 없다. 가 당신 의 이지 이지 아닌 이지 이지 아닌 가 아닌 아닌 아닌 이지 당신 아닌 당신 이지

 

 

나는 뒤샹을 죽인다.

 

미술은 원시 성을 회복해야 한다."

"단순 명료함/

이 그 통찰들 통찰들 을 와 통찰들 그 통찰들 은 더더욱 당신 당신 당신 당신 당신 당신 은 은 당신 헛수고인 헛수고인 은 은 은 은 헛수고인 은 헛수고인 헛수고인은 모든 위대한 정신은 오로지 끝내 단순함으로 귀결된다. " 

"밀도/

예술이 영원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술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예술이 존속하는데 있어 얼마나 기가막힌 안전장치인가. "

"위대한 문명/

역사 에 에 에 에 에 적 에 에 적 적 커다란 적 고 적 커다란 고 커다란 커다란 커다란 커다란 커다란 커다란 커다란 커다란 그리고 인간들은 지들끼리 그것을 "위대한 문명 :"이라 말한다."

"드라마를 창조하라/

 

우리가 가장 일상에서 접하기 쉽고 가까이 하는 예술 쟝르는 음악과 영화다. 그 이유는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성. 그리고 그 시간 위에 쓰여지는 희로애락의 기승전결. 한마디로 그 시간 동안 인간은 그 드라마에 몰입한다. 회화는 한 화면에 모든 것이 일순간에 관객에 노출 된다. 거기에 관객에게 부여되는 구조적 시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회화 의 되기 된 된 된 된 된 완성 완성 완성 완성 완성 완성 완성 완성 완성 완성 완성 완성 동안 얼마 완성 된 완성

 

회화 의 시간 시간 시간 시간 시간 시간 시간 시간 시간 말 시간 말 말 말 말 말 이 앞 에 에 얼마 그 그 완성 그 가 가 느끼게 관건 가 가 그 가 그 그 그 그 그 그 된 관객 의 없는 회화 회화 회화 회화 회화 회화 회화 회화 회화 회화 회화 고난이도 마음 고난이도 고난이도 고난이도 고난이도 고난이도 회화 고난이도 고난이도 고난이도 고난이도 회화 고난이도 고난이도 고난이도의 그것은 가장 어려운 궁극의 창작이다. 그 기적과도 같은 단 한방을 위해 평생을 보낼 수도 있다. "  

"미술에서 주제로서의 사회문제/

 

사회적 이슈를 갤러리 전시 공간으로 옮기는 것은 지극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 이슈를 용감하고 과감하게 수면 위에 들추어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적 에 에 에 에 이 안 그럴듯 안 안 안 안 안 이 안 안 안 안 반복 인 사회 하는 사회 하는 이슈 하는 의 하는 의 에 에 에 에 에 이슈 이슈 이슈 이슈 작가가 만일 참을 수 없는 사회적 문제 제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표현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점일 때에만 이루어져야 하며 그 행위 만을 가지고 평생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 작가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목격하고, 느끼며, 통찰 해 가는 모든 것을 표현하고 긐록하는 자이 만일 그러하다면, 그 작가의 작품에는 오로지 사회적 이슈만이 존재 할 수 없다. 내 제일 혐오 작품 공간 작품 멋진 멋진 멋진 공간 공간 공간 공간 공간 공간 공간 멋진 공간 멋진 "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 한다." /라캉. 비평/

"인간 의 의미 적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한다는 이 말은 마치 그러지 말라 라는 늬앙스로 현대인들에게 요즘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나는 «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일단 라캉은 타자와 나 자신을 구분한다. 분명 현상계에서는 나와 타자, 나와 세상으로 구분되어 지게 끔 프로그래밍 되어있다. 만일 라캉의 개념이 현상계 내에서만 유효하다고 선언 했다면 그나마 봐 줄만 하다. 허나 끝까지 추적하면 그 도달 점에는 나와 타자는 구별할 수 없는 지점으로 향한다. 고 믿는 의 까지 까지 의 의 의 의 인간 하게 한 한 하게 하게 하게 하게 하게 하게 까지 하게 하게 하게 까지 하게 하게 하게 하게 하게 에너지는 형태 생존 생존 형태 생존 는 생존 하게 하게 하게 형상 형상 생존 형상 하게 형상 형상 형상 형상 형상 그리고 그 자아는 보존을 위해 세상과 나를 구별한다. 하지만 그 작은 에너지의 응집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흩어지고 광활한 에너지의 바다로 횜귀한. 그것이 현상계의 죽음이다.

 

한마디로 본질은 나라고 믿는 자아는 임시적인 허상이며 거기에는 나와 타자는 존재하지 실는다 배고픈 이의 최대 욕망은 한 끼의 식사이다. 그에게 내가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고픈 욕망이 있다. 둘 다 욕망이다. 배고픈 이를 돕고자 하고 그로인해 배고픈 이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자 하는 것 또한 나띘 욕띘 욕띘. 결국 타자의 욕망을 채워줌으로서 나의 욕망을 채운다. 부모의 바람을 채워 나가면서 동시에 보람을 느끼고 그것에 만족을 느끼는 이도 적지 않다. 타자 을 을 한다 누군 가 에게 에게 에게 에게 에게 말 에게 에게 있는 에게 가 말 말 말 그것은 개개인의 차이와 선택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좀 더 깊이 접근하면~ 과연 나 자신만의 욕망이라는 것이 존재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도달. 나의 욕망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나에게서 발현된 욕망이라는 것은 결국 나의 감정, 호르몬, 세포. 여러 다양한 화학적, 생물학적 반응들의 투영일 뿐이다. 하지만 그 화학적 생물학적 본능이 소위 "나"라고 말할 수 있는가 ? 그것들이 내가 아니라면 과연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 그 모든 것을 지워 나가면 결국 "나" 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잠시 착각 속에 있다가 광대한 "무지" 의 상태로 회귀할 뿐이다.

 

결국 그 지점에서는 나와 타자는 구분되지 않는다. 인간은, 모든 존재는 그것이 나라고 착각하든, 타자라 선을 긋던, 그저 욕망 할 뿐이다. "인간은 욕망을 욕망 할 뿐이다." 나는 타자 의 욕망 을 욕망 하지 않고 나의 욕망 을 욕망 했다 ~ 라는 착각 을 깨닫게 된다면 결국 나와 타자 / 나와 세상 의 이분법 이 무기력 해 지며 그저 « 존재 는 욕망 한다. 그 욕망은 철저히 ”에너지의 보존과 확장, 생멸일 뿐이다.”로 귀결된다.

그 지점까지 도달하면 인간이라는 동물은 오히려 타자의 욕망을 더더욱 욕망해 나아간다.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NOUVELLE VAGUE" 영원하다/

 

유행 그 그 그 그 그 그 그 그 언제나 언제나 그 그 그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그 하려는 그 언제나 그 그 그것 매일 매일 그리고 것 그리고 것 것 것 그리고 것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것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부활 그리고 부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 메커니즘을 안다면 거기에는 새로울 것도, 낡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친다.

 

NOUVELLE VAGUE 영원하다.

그것 의 못한 도 도 도 계가 계가 계가 계가 계가 계가 계가 계가 계가 인 의 가 가 의 의 의 의 는 전진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사실 그러하여.....

나는..... 그 최초만을 원한다.... 처음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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